제20장
산속 서당
새 서당에는 문패를 달지 않았습니다.

새 서당에는 문패를 달지 않았습니다.
궁지기의 이름을 적으면 찾아오는 사람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의 이름을 정하고 싶어 했습니다. 백도는 문패가 없어도 사람들이 알면 이름이 있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노문은 산속이라고 적었습니다. 다른 곳과 구별할 수 없어서 좋다고 했습니다.
첫해 겨울은 길었습니다. 곡식이 줄었고 지붕이 샜습니다. 아이들은 배운 일을 써서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궁지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글을 읽어 주었습니다. 예전에는 왕의 앞에 올릴 문서를 고쳤습니다. 이제는 소 한 마리를 빌리고 갚는 약속을 고쳤습니다. 어느 쪽이 더 작은 일인지 쉽게 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여러 나라의 이름을 가르치며 넓은 지도를 펼쳤습니다. 훗날 반드시 그 나라로 가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국경 밖의 세상을 자기 눈으로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지도에는 우나라와 괵나라의 이름도 지우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나라와 사라진 나라를 다른 색으로 적었습니다.
아연은 왜 지우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없어진 것과 없었던 것은 다르다.”
궁지기가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그 문장을 베꼈습니다. 노문은 베끼는 대신 그날의 날짜를 적었습니다. 나중에 스승이 다른 말을 하면 함께 남겨 두려고 했습니다.
봄이 되자 새로운 아이 둘이 찾아왔습니다. 궁지기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먹을 것은 여전히 모자랐습니다. 먼저 살던 제자들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목생이 상을 고쳤고 미령이 그릇을 구했습니다. 계량은 장부에 먹을 사람을 더했습니다.
궁지기는 자신이 데리고 나온 아이들만 세상의 미래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살아남은 것은 재주가 더 뛰어나서가 아니었습니다. 우연과 다른 사람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은 아이들은 싫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제자라고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궁지기는 그 자랑을 모두 빼앗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밥을 먼저 차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몇 해 뒤 서당은 더 이상 숨을 곳만은 아니게 됩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 묻고 배우는 곳이 됩니다. 궁지기는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문을 닫지는 못합니다.

가장 먼저 산을 떠난 사람은 목생이었습니다.
스물다섯이 되던 해였습니다. 계곡 아래에서 다리를 고치다가 노나라 상인의 눈에 들었습니다. 큰 물길에 다리를 놓을 사람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궁지기는 보내 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계약의 조건을 함께 읽었습니다.
목생은 스승이 붙잡지 않자 서운했습니다. 떠날 생각을 오래 했는데 떠나도 된다는 말을 들으니 버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궁지기는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남아 있어야 내 제자인 것은 아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목생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스승도 오래전 왕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인지 모른다고 나중에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혜는 밥을 적게 먹은 사람을 알아보았고 궁지기는 밤늦게 돌아오는 발소리를 기다렸습니다.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음에는 소하가 떠났습니다. 정나라 사신의 통역을 도우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미령은 위나라의 구휼 창고에 들어갔습니다. 초목은 약재상과 함께 진나라로 갔습니다. 같은 진이라는 소리를 듣고 백도가 눈을 들었지만 글자가 다른 나라였습니다. 서쪽의 진이었습니다.
백도는 초나라로 갔습니다. 강한 나라에서 약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습니다. 궁지기는 강한 나라가 강한 사람만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멈췄습니다. 제자가 직접 볼 일을 미리 답으로 막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씩 떠날 때마다 그릇이 줄었습니다. 새로 온 제자들이 그 자리를 채웠지만 같은 그릇은 아니었습니다. 궁지기는 떠난 사람의 상을 창고에 쌓지 않았습니다. 쓰는 사람에게 내주었습니다.
제서는 마지막까지 천에 그린 바둑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떠나는 날 스승에게 한 판을 청했습니다. 궁지기는 끝까지 두었습니다. 제서가 이겼습니다. 누구도 일부러 져 주었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돌을 거두었습니다. 이겨야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이제 제서도 자기 삶에 써야 했습니다.

열다섯 해가 흐른 뒤 노문은 동문들의 이름을 한 장에 모았습니다.
같은 나라에 머무는 사람도 있었고, 한 사람이 여러 나라를 거치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다른 조정과 관청에 자리를 얻었습니다. 처음부터 스승이 정해 준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떠돌다 머문 곳도 있었고 쫓겨나 옮긴 곳도 있었습니다. 벼슬을 얻었다 잃은 이도 있었습니다.
노문은 이름 옆에 머물렀던 나라들을 적었습니다. 같은 소리의 나라 이름은 글자를 달리 적었고, 한 이름 옆에 나라가 둘 이상 놓이기도 했습니다.
목생은 노나라에서 다리를 놓은 뒤 연나라의 성과 등나라의 물길을 살폈습니다. 위담은 진晉나라에서 법을 다루다가 설나라의 약속을 기록했습니다. 조린은 허나라의 재판과 주나라의 감시 기록을 맡았고, 채은은 채나라와 기나라에서 흩어진 가족의 이름을 모았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한 나라에만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노문은 마지막 칸을 비웠습니다. 산속에 남은 궁지기의 이름을 어느 나라에 넣어야 할지 정하지 못했습니다. 우라고 쓰면 없는 나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 사는 땅의 이름을 쓰면 스스로 택하지 않은 신하가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나라를 적지 않았습니다.
동문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각자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훌륭한 업적만 보내지 말라고 덧붙였습니다. 스승이 틀린 말도 적으라고 했던 것처럼, 자기가 잘못한 일도 함께 남기자고 했습니다.
답장은 한꺼번에 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은 검열을 피하려고 장사꾼의 물품 목록 사이에 끼어 왔습니다. 어떤 것은 절반이 젖었습니다. 백도의 편지는 가장 늦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없었고 다음에는 너무 많은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노문은 편지들을 고쳐 쓰지 않았습니다. 글씨가 다른 채로 묶었습니다. 같은 학교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같은 사람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함께 달아났고 이제는 서로 다른 나라가 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나라가 멸망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편지에도 그날 성문을 나올 때 뒤에서 들린 여자의 물음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두고 가시오.
COMMENTS · 제20장
산속 서당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읽다가 궁금한 점이나 보탤 내용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