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괵나라의 마지막 깃발
괵나라의 깃발은 비 오는 날 내려갔습니다.

괵나라의 깃발은 비 오는 날 내려갔습니다.
성문이 무너지기 전에 왕이 달아났습니다. 왕이 달아났다는 소문은 성 안을 한 바퀴 돌고서야 성 밖으로 나왔습니다. 남은 병사들은 누구의 명령을 받을지 몰랐습니다. 어떤 이는 창을 놓았고 어떤 이는 끝까지 싸웠습니다. 같은 충성이 다른 죽음을 만들었습니다.
손이는 사당을 지키라고 명했습니다. 곡식 창고도 지키게 했습니다. 병사들은 사람보다 먼저 건물 앞에 섰습니다. 재산을 보존하는 명령은 구체적이었습니다. 백성을 해치지 말라는 명령은 넓었습니다. 넓은 말은 좁은 골목에서 자주 사라졌습니다.
부장이 전공 장부를 내밀었습니다. 죽은 적의 수와 잡은 수, 거둔 수레가 적혀 있었습니다. 손이는 빈칸 하나를 보았습니다.
“달아난 백성은 몇인가.”
“셈하지 않았습니다.”
손이는 붓을 들었다가 내려놓았습니다. 그 수를 적어도 이미 흩어진 사람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음 장부부터는 적게 했습니다. 아무 쓸모도 없을지 몰랐지만 묻지 않은 것으로 남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우나라에서는 괵나라 멸망 소식에 술을 풀었습니다. 국경전에서 사람을 잃은 집에 위로금을 주겠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실제 돈이 오기 전에 축하 깃발이 먼저 걸렸습니다.
우공은 염숙을 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끝났군.”
염숙이 절했습니다.
“전하의 결단으로 오래된 근심을 덜었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도 편안해지지 않았습니다. 끝났다는 말을 궁지기에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과 이제 돌아오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날 밤 우공은 궁지기를 부를까 생각했습니다. 이제 괵이 사라졌으니 걱정을 거두고 함께 술을 마시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먼저 사람을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왕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궁지기가 깨닫고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 밖에서는 진나라의 귀환을 맞을 술과 군량을 준비했습니다. 돌아오는 군대가 어디서 쉬고 얼마나 머무를지 묻는 문서가 왕궁에 도착했습니다. 염숙은 예에 따라 답했습니다.
성문은 열려 있을 것이라고.

괵나라의 깃발이 내려갔다는 소식 뒤에 손이의 초대장이 왔습니다.
진나라 본대는 아직 괵나라 땅에서 귀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손이는 앞서 우나라 국경의 역관으로 와 있었습니다. 돌아올 군대의 숙영을 의논한다는 명분이었습니다.
초대장은 짧았습니다.
술을 청하는 말도, 정사를 논하자는 말도 없었습니다. 바둑판을 준비해 놓겠다고 했습니다. 장소는 국경 가까이 마련한 사신의 역관이었습니다. 손이가 본대의 진영에서 나와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대군은 괵나라 땅에서 귀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궁지기는 초대장을 태우지 않았습니다. 염숙에게 보였습니다. 염숙은 예상하지 못한 듯 눈을 들었습니다.
“가시겠습니까?”
“전하께 알리고 가겠습니다.”
염숙은 왕에게 궁지기가 적국의 대부와 만난다고 전했습니다. 궁지기는 그 말이 어떻게 바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알리지 않고 가면 아이들이 치를 값이 더 커질 수 있었습니다.
우공은 허락했습니다.
“가서 그대가 걱정하는 것을 직접 물어보게.”
그 말에는 빈정거림도 피로도 있었습니다. 궁지기는 감사의 절을 올렸습니다. 왕은 절하는 정수리를 보았습니다. 궁지기가 자신에게는 하지 않던 말을 손이에게 하게 될까 생각했습니다.
떠나기 전 제서가 바둑돌 주머니를 내밀었습니다. 돌통째 가져가면 무거워 작은 천에 옮겨 담았다고 했습니다.
“거기에도 돌은 있을 것이다.”
궁지기가 말했습니다.
“아는 돌이 있으면 덜 낯설지 않습니까.”
궁지기는 주머니를 받았습니다. 깨진 흰 돌 하나가 섞여 있었습니다. 제서는 그것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모양이 달라도 놓이는 자리는 같다고 했습니다.
목생이 동행하겠다고 했습니다. 궁지기는 혜를 도우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저는 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아 달라는 것이다.”
목생은 그제야 물러났습니다. 궁지기는 자기가 아이의 책임감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른을 따라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다른 아이들을 지키라는 말로 붙잡았습니다. 좋은 말도 누군가의 선택을 좁힐 수 있었습니다.
역관으로 가는 길에 궁지기는 장터를 지났습니다. 진나라 병사가 값을 치르고 짚신을 샀습니다. 값을 받은 노인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궁지기는 노인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먹고사는 일은 나라보다 가까웠습니다.
역관 문 앞에서 병사들이 그의 허리띠를 확인했습니다. 칼이 없었습니다. 바둑돌 주머니를 열자 작은 돌들이 손바닥에 쏟아졌습니다. 병사가 세려고 하자 궁지기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빠뜨리지 말아 주게.”
병사는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손이는 장군의 갑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허리에는 칼이 있었지만 바둑판 옆으로 풀어 놓았습니다. 궁지기도 겉옷을 벗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빈 판이 놓였습니다. 창문 밖으로 군마가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느 쪽을 잡으시겠습니까.”
손이가 물었습니다.
“손님에게 먼저 두게 하시지요.”
손이는 흑을 밀었습니다. 궁지기는 흑돌 하나를 집었다가 내려놓았습니다.
“오늘은 백을 잡겠습니다.”
손이는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먼저 움직이는 자와 나중에 답하는 자. 그 구분을 너무 쉽게 말로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평범한 판이었습니다. 손이는 넓게 벌렸고 궁지기는 얇아 보이는 돌들을 이어 갔습니다. 흑이 밀면 백이 물러났습니다. 손이는 우나라의 조정에서 이 사람이 어떻게 말했을지 짐작했습니다.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버린 자리는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여기에 있습니까?”
손이가 물었습니다.
궁지기의 손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친자식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없습니다.”
“그런데도 모두 데리고 계십니까.”
궁지기는 돌 하나를 놓았습니다.
“돌아갈 집이 있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손이는 그 수를 보았습니다. 백돌 셋이 흑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아직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살리려면 여러 번 손을 써야 했습니다. 그는 다른 쪽을 넓혔습니다.
“좋은 재목이라던데요.”
궁지기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밥을 잘 먹으면 좋겠습니다.”
손이는 처음으로 시선을 피했습니다. 자기도 아이들을 재목이라고 불렀습니다. 정복한 뒤 데려다 쓸 수 있는 사람을 셀 때 그렇게 적었습니다. 어린 얼굴이 아니라 나중의 쓸모를 보았습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돌만 놓았습니다. 판 한가운데에 흑의 큰 무리가 모였습니다. 궁지기의 백이 양쪽에서 다가왔습니다. 손이는 그 백이 연결되기 전에 한쪽을 밀었습니다. 궁지기는 대답하지 않고 작은 돌 하나를 귀에 놓았습니다.
손이는 그곳을 보다가 궁지기의 손을 보았습니다. 손톱 밑에 먹물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의 글을 고치다가 묻었을 것 같았습니다. 자신도 장부를 고치다가 같은 자리에 먹물을 묻혔습니다.
“왜 그곳입니까?”
“여쭙고 싶었습니다.”
궁지기가 말했습니다.
손이는 무엇을 묻는 것인지 아직 다 알지 못했습니다.
“괵에서는 오래 머물지 않으십니까?”
궁지기가 물었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요.”
“우나라의 문은 좁습니다. 많은 군대가 한꺼번에 쉬기에는.”
손이의 손이 잠깐 멈췄습니다. 궁지기는 그 멈춤을 보았습니다. 숙영지를 묻는 말에 그토록 생각할 까닭은 없었습니다.
“돌아가는 군사도 길을 익혀야 합니까?”
손이는 돌을 놓았습니다. 우나라 성벽을 조사한 군사의 보고를 이 사람이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짐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길은 한 번 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지요.”
궁지기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나라를 치겠다는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니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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