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부러진 다리

목생은 아버지가 죽은 강에 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10-20 · 책으로 읽기

목수가 없는 다리

목생은 아버지가 죽은 강에 가지 않았습니다.

궁지기가 그 강의 다리를 살피러 간다는 말을 했을 때도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출발할 때 수레 뒤에 앉아 있었습니다. 자귀를 천에 싸서 들고 있었습니다.

새 다리는 오래된 기둥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전쟁 중 급하게 보수한 뒤 그대로 두었습니다. 관리들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목생은 기둥을 두드렸습니다. 속이 빈 소리가 났습니다.

“사람을 건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말했습니다.

관리 하나가 웃었습니다.

“어제도 건넜다.”

목생은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제도 건넜다는 말이 오늘의 안전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말도 그 나이에는 정확히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자기 손으로 난간을 흔들었습니다. 기둥 사이에서 진흙이 떨어졌습니다.

궁지기는 통행을 멈췄습니다. 관리가 왕에게 보고하겠다고 했습니다. 군량 수레가 늦으면 책임지라고 했습니다. 궁지기는 수레를 하나씩 비워 가볍게 건너게 했습니다. 건너편에서 짐을 다시 실었습니다. 하루가 걸렸습니다.

그날 저녁 왕은 궁지기에게 왜 다리를 새로 놓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궁지기는 사람과 재료가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염숙은 진작 보고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궁지기는 지난해 올린 문서의 날짜를 말했습니다. 왕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목생은 문밖에서 기다렸습니다. 궁지기가 나왔을 때 물었습니다.

“알게 되셨습니까?”

“오늘은 보수하라 하셨다.”

“작년에도 보수했으면 아버지가 살아 있습니까?”

궁지기는 걸음을 멈췄습니다. 다리가 무너진 것은 전쟁 중이었습니다. 적의 화살도 있었고 불어난 물도 있었습니다. 보수했다면 반드시 살았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보수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살 가능성이 더 있었을 것이다.”

목생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확신보다 그 대답이 오래 남았습니다. 세상에는 반드시 구한다는 약속보다 죽을 가능성을 줄이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며칠 뒤 아이는 다리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잘 만든 모형 하나와 일부러 약하게 만든 모형 하나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짐을 올리자 약한 것이 먼저 꺾였습니다. 목생은 웃지 않았습니다.

“왜 두 개를 만들었느냐.”

궁지기가 물었습니다.

“멀쩡한 것만 보면 무엇이 잘못되는지 모릅니다.”

궁지기는 부러진 모형도 벽장에 넣었습니다. 훗날 압수하러 온 관리들은 그 두 개를 모두 군사용 모형이라고 적게 됩니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

노문이 처음 긴 문장을 소리 내어 읽은 날 아이들은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처음부터 기다릴 줄 알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백도가 대신 읽으려 했고 제서는 끝말을 먼저 말했습니다. 노문은 죽간을 덮었습니다. 궁지기는 아이들에게 침묵하라고 명하지 않았습니다. 노문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노문은 나무쪽에 적었습니다.

끝까지.

두 글자였습니다. 아이들은 그날부터 기다리는 길이를 배웠습니다. 노문이 막히면 자기 손가락을 보았습니다. 대신 말해 주는 것이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때로는 말할 자리를 빼앗는 일이었습니다.

궁지기는 조정에서 돌아온 날 그 수업을 떠올렸습니다. 자신이 왕의 말을 얼마나 자주 대신 끝냈는지 생각했습니다. 왕이 재정을 말하면 다음에 군량을 말할 것을 알았습니다. 제사를 말하면 그다음에 풍년을 기대할 것을 알았습니다. 안다는 이유로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음 회의에서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왕은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궁지기가 침묵하자 다른 신하들도 침묵했습니다. 우공은 자기가 잘못 말했는지 의심했습니다. 기다림조차 오래된 관계 안에서는 다른 뜻으로 읽혔습니다.

회의 뒤 왕이 물었습니다.

“오늘은 할 말이 없었는가.”

“전하의 말씀을 먼저 듣고 싶었습니다.”

“늘 듣고 있지 않았나.”

궁지기는 차이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왕은 그가 속에 다른 생각을 감춘다고 여겼습니다.

서당에서 노문은 한 문장을 끝까지 읽었습니다. 목소리가 떨렸고 몇 군데 막혔습니다. 끝난 뒤 누구도 잘했다고 소리치지 않았습니다. 다음 문장을 기다렸습니다. 노문은 다시 읽었습니다.

궁지기는 그 모습을 보며 어른들 사이에서 실패한 것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더 현명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서로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밤 노문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글은 기다려 줍니까?”

“다시 읽을 수 있으니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구나.”

“그럼 사람도 다시 물으면 안 됩니까?”

궁지기는 왕에게 다시 물을 말을 생각했습니다. 왜 그리 화가 나셨습니까. 무엇이 두려우십니까. 그러나 조정에서 그 질문을 하면 왕을 어린아이처럼 대한다는 말이 나올 것이었습니다.

노문은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물을 때도 자리와 권력이 먼저라는 것을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궁지기는 아이가 그것을 너무 빨리 배우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적의 말

소하는 괵나라 말을 조금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국경 장터에서 물건을 바꾸던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물건도 어느 쪽 말로 부르느냐에 따라 값이 달랐다고 했습니다. 소하는 아버지에게 물건 이름을 배웠고 어머니에게 흥정할 때 웃는 법을 배웠습니다. 두 사람은 전쟁 전에 사라졌습니다. 어디에 붙잡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는 시장에서 괵나라 상인과 말을 나누었습니다. 백도가 그것을 보고 화를 냈습니다. 적의 말을 왜 하느냐고 했습니다. 소하는 물건을 사려면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로 우리 마을을 태우라고 했을 거야.”

백도가 말했습니다.

소하는 대답했습니다.

“그 말로 불을 끄라고도 했겠지.”

둘은 싸우지 않았습니다. 싸울 것 같은 침묵으로 서로를 보았습니다. 궁지기는 어느 쪽을 꾸짖어야 할지 먼저 정하지 않았습니다. 백도의 마을이 불탔다는 사실과 언어가 명령을 골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는 다음 날 아이들에게 같은 문장을 두 가지 말로 읽게 했습니다. 밥을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목이 마르다는 말도 읽었습니다. 아이들은 웃다가 조용해졌습니다. 괵나라 말로 배고프다고 해도 배가 고픈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소하는 그 뒤로도 백도 앞에서 괵나라 말을 줄였습니다. 잘못해서가 아니라 백도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도는 상인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화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궁지기는 그 작은 조심스러움을 외교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그렇게 이름 붙이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붙이면 훌륭한 일을 했다고 생각해 그만둘 수도 있었습니다.

몇 달 뒤 괵나라에서 온 노인이 우물에서 쓰러졌습니다. 백도가 먼저 달려가 부축했습니다. 노인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무엇인가 말했습니다. 백도는 소하를 불렀습니다.

“무슨 말이야?”

“고맙다고.”

백도는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일은 훗날 백도가 다른 나라에서 전쟁을 준비할 때 오래 묻어 둔 기억이 됩니다. 적국의 병사를 숫자로 부르는 자리에서, 그는 때로 알아듣지 못한 고맙다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기억한다고 반드시 멈추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것과 같지는 않았습니다.